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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Case/Architecture

(전시시설) 화개의 집

화개의집







권형표와 김순주는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함께 공부하였고, 2009년 서울에서 바우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도시, 건축, 조경 분야를 중심으로 인테리어, 가구, 제품 디자인을 포괄하는 폭넓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금천 공공의 방, 종로 느린 날 등의 도시 리서치 작업을 통해 도시 공공 공간의 잠재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나 어린이 미술관 등에서 어린이와 함께하는 건축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천안 흥 박물관, 상수동 골목집, 맑은샘 학교 등의 작업을 진행했고, 2012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어디에 무엇을 지었느냐

유방근(경상대학교 교수)

 

이 집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가지의 일반적인 주제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장소’에 관한 것이고 ‘기능(내용)’이 그 다음이라 하겠다. 즉 ‘어디에 무엇을 지었느냐?’는 것이다.

장소: 조용함의 시작

19번 국도에서 섬진강을 왼쪽에 끼고 강과 들판을 지나 화개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이 쌍계사 벚꽃길을 가기 위한 첫 시작길이다. 유명한 시골길에서 자주 볼 법한 어지러운 2, 3층의 상가와 간판길의 끝 오른쪽에 ‘쌍계명차’란 찻집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여기는 중요한 쌍계꽃길의 시작이자 인공의 번잡스러움이 끝나고 봄날 꽃발의 소란스러움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이제 조용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눈부시게 화사한 벚꽃 행렬을 몸으로 맞이할 수 있다.

건축가는 그 조용함의 미장센을 건축물로 해결한다. 500mm 길이의 벽돌과 30mm 줄눈으로 된 수평적 방향성이 고요함을 강조하려 한다. 실제 줄눈의 시공은 20~25mm정도인 듯하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회색의 시멘트벽돌은 절간 입구의 찻집 껍질로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불규칙한 크기로 뚫려진 시멘트벽면은 외벽에서 느껴지는 수도자적 입면을 잔잔히 부서지게 하고 차밭을 연상시켜 부드러움을 준다.

도로에서 조금 물러나 앉은 집은 도로의 경사에 의한 3단의 계단이 건물 끝에서 사라지면서 최초 삼거리에서 진입하면서 보여지는 일점 투시도적 소점을 더욱 강조하고 여기가 꽃길의 입구라고 말하는 듯하다. 꽃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때는 그 반대로서 높아지는 덩어리가 이웃 건물과 유사한 풍경을 만든다. 매스와 재료가 보여주려고 했던 장소성은 잘 의도된 듯이 보인다.

기능(내용): 갓 쓰고 오토바이 탄 격?

몇 세대에 걸쳐 차를 만드셨다는 건축주의 오래된 전통(갓)과 그것을 카페로 재현하려는 현시대의 요구(오토바이)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현장을 방문해 처음 대한 건축주의 설명으로 그 의문점은 풀리게 되었다. ‘차’라는 ‘갓’과 ‘카페’라는 ‘오토바이’의 완충적 역할인 건축주 아들이 있었던 터였다.

여기는 하동 전통차를 마시는 찻집이다. 하지만 내부 공간은 여태껏 경험한 찻집의 스케일을 확 깨게 한다. 3평 남짓 온돌의 사각방 찻상 주위에 도란도란 앉아서 방문의 창호지와 벽지에 스며드는 차향과 바닥의 온기와 손끝의 온기를 느끼며 다음 차를 기다리게 하는 빈 찻잔을 바라보는 작고 압축된 공간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일까? 르 코르뷔지에의 라뚜레트 수도원에서 긴 복도에 붙은 사각뿔 지붕의 작은 기도실과 부속성당이 다른 건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계단식 좌식 찻집은 오토바이와 갓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은 건축주가 만족하는 건축물이 아니더냐? 그리고 이 찻집은 내부 공간의 변이로써 수직이동의 긴장과 완화를 보여주고 옥상 테라스에 도착하면 정면의 청송숲이 눈앞에 펼쳐지는 잘 쓰여진 시나리오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외벽의 불규칙 구멍으로 나타나는 내부의 극적 효과를 보자. 어떤 이는 피터 춤토르의 콜룸바미술관을 떠올릴 것이다. 피터 춤토르는 왜 그러한 크기의 벽돌을 쓰고 불규칙 구멍을 뚫었을까. 그것은 폐허에 남은 벽돌의 크기를 재유닛화한 결과물이고, 내부에 떨어지는 엷은 시간의 연속성을 조각난 빛으로 처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낡은 조각과 새로운 재료를 빛으로 연결시키게 하는 감동이다. 그러한 연출이 여기 찻집에서도 이루어졌는데 왜 느껴지는 건 다른 것일까? 재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조금 부족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재료의 거침과 부드러움, 차가움과 따뜻함의 대비를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는 시공 면에서 잘 읽혀지고 느낄 수 있다.

‘어디에 무엇을 지었느냐’라는 통속적 전제로 볼 때 장소에 대한 작가의 노력은 무척이나 잘 녹아들은 듯하다. 무엇이라는 내용은 주관적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건물은 이제 쌍계사 꽃길의 시작과 끝을 알리면서 그 속의 차 향기로 사람들을 따뜻이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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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근은 베르사이유 건축대학교 졸업 후 파리 JPJ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귀국 후 주로 건축 재료의 물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설계 작업을 했으며 밀라노 폴리테크닉의 초빙교수로 있을 때는 밀라노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현재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며 유네스코 후원 국제스튜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파리 노인복지센터, 도봉정보화 도서관, 유진사이언스 연구동, 고성 충혼탑, 지리산 주택 등이 있다.




단정한 여인이 있을 것만 같은 꽃집

전성은(전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단정한 여인이 있을 것만 같은 꽃집. 그 단정함은 지나치게 정갈하여 범접하기 어렵지 않은, 딸랑하는 풍경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 말 없이 반듯한 미소만으로, 조금 떨어져 지켜봐 주는 편안하지만 정돈된 단정함이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궁금함에 몇 마디만으로도 시원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세련됨이 있다. 그 세련됨은 그곳의 가치를 알 만한 사람들을 들이는 일종의 여과작용을 하지 않을까’ 이것은 ‘화개의 집’에 대한 첫 느낌이자 기억의 여운이다.

잘 재단된 덩어리와 정제된 디테일

송판노출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500mm의 시멘트벽돌과 30mm의 의도된 줄눈이 만들어내는 거친 재료로 섬세하게 닫혀진 덩어리. 그 밑으로 맑게 열려진 창. 이 두 대조되는 닫힘과 열림을 가르는 날렵한 철제 캐노피. 그 위로 매스가 후퇴하면서 만들어내는 열린 공간. 이는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지만 지루하거나 무거움에 우울해지지 않을 경쾌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듬고 다듬고 했을 법한 잘 재단된 비례며, 재료와 재료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디테일의 처리가 돋보이는 건축물이었다. 건축 재료의 순수한 질료의 해석과 섬세한 디테일 처리는 외연뿐 아니라 내부 구석구석까지 지속된다.

숨겨진 상상의 빛과 달리는 연상의 빛

건물이 말을 거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궁금증을 자아낼 때이다. 화개의 집에는 두 개의 빛이 이 역할을 한다. 닫혀진 덩어리 위에 ‘잘게 부서지는 빛의 파편이 상상되는 작은 홀 들’은 담겨진 내부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머리 한끝에 궁금함을 남긴다. 그 밑으로 밝게 열린 창을 통해 보여지는 ‘길게 매달린 조명’은 멈춰진 시간를 거부하듯 거리로 드러나 인지의 속도를 조정한다. ‘숨겨진 상상의 빛과 달리는 연상의 빛’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박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한 번쯤 들어가 보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흐름, 머무름의 공간의 변주

화개의 집은 중심 공간들이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대공간으로 길게 병치되어 있다. 방으로 구획되지 않고 중앙벽을 중심으로 흐르는 공간의 연속체로 공간의 크기가 작아질 뿐 2층 박물관의 공간까지 지속된다. 이 공간의 흐름은 층위가 달라지면서 변주가 시작된다.

매장이 있는 공간은 안단테 정도의 메트로놈의 똑딱거림이, 이것이 천천히 한단 한단 올라서 머물고 싶은 곳에서 차를 마시는 다도 공간에서는 수동태엽이 저절로 늦추어진 아다지오로 변화한다. 잠시 긴 호흡의 숨을 쉬듯 박물관의 공간에 이르면 이제 태엽이 다 된 듯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간을 맞는 것만 같다. ‘일상의 시간’에서 ‘차의 시간’으로 그리고 ‘생각의 시간’으로 넘어가듯 화개 집의 연속된 공간 흐름은 직관적으로 시간의 리듬을 타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태엽의 동력으로 다시 한 번 똑딱하고 매트로놈이 넘어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곳이 서쪽으로는 쏟아지는 청송숲과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저 멀리 화개천의 끝선까지 시선을 보내는 열려진 테라스다. 간간이 바람의 흔들림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자연의 시간’까지 도달하게 되는 변주를 마치는 순간이다.

바우건축사사무소의 화개의 집은 잘 정제된 디테일과 흐르는 공간의 연결, 의도된 자연광의 유입과 인공광의 변주로 공간의 질을 잘 선도하고 있다. 굳이 하나의 아쉬움을 말한다면 한국 차의 향기가 느껴지는 머무름의 공간이 조금 아쉬웠다고나 할까.

커피는 갈아내는 순간부터 진하게 그 풍미가 코에 와 닿는다. 커피와 달리 한국의 전통차는 입가에 가깝게 다다랐을 때 비로소 코끝에 전해지는 찰나의 연한 향기의 맛이 있다. 밍밍하다 싶을 정도로 심심하지만 혀로 타고 넘어갈 때 느껴지는 연한 부드러움을 담은 편안함의 향기가 있다. 이러한 향기가 있는 공간이 있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실제로 그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있다. 다도의 강연장에서 박물관으로 넘어가는 곳, 외부에 중공벽의 타공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이 상상되던 곳 말이다. 그곳에는 분명 어떤 흐름이 잠시 정지되는 느낌이 있었다. 다만 여기서 멈춤의 공간이 좀 더 부드러운 향기였거나 아니면 정말 호흡이 멈춰질 것 같은 찰나의 숨막힘과 같은 순간이 느껴졌더라면 하는 아쉬운 욕심이 들었다.

시간성, 장소성이라는 암묵적 제약과 경계

전통이라는 시간성과 지역이라는 장소성을 가진 작업을 대할 때 그것의 건축적 태도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는 필연적으로 갈등 요소를 지닌다. 전통차박물관이라는 이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족쇄가 되어 과거로 회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의 순간을 전통차 명인인 의뢰자와 건축가는 몇 번을 맞았으리라. 그러나 화개의 집은 명확히 ‘지금, 여기’ 그리고 그 진행형의 명쾌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암묵적 제약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시간을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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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은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 석사를 받았다. 현재 (주)전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건축 전시 기획을 시작으로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근대건축특별전 <장소의 재탄생>,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주택 70년사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의 전시 큐레이팅 및 전시 디자인을 총괄했다.






설계: 바우건축사사무소(권형표, 김순주) 

설계담당: 이영복, 이명주, 심상일, 이가연 

위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621-6외 1필지

용도: 박물관, 휴게음식점

대지면적: 784㎡

건축면적: 363.36㎡ 

연면적: 813.11㎡

규모: 지상 3층 

주차: 5대 

높이: 11.23m 

건폐율: 46.35% 

용적률: 103.71%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외부마감: 시멘트벽돌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구조설계: 서울구조 

기계전기설계: 진원 엔지니어링

시공: 이각건설

조경: 바우건축사사무소 

설계기간: 2014. 9. ~ 2015. 5.

시공기간: 2015. 6. ~ 2016. 4. 

건축주: (주)쌍계명차


출처: <http://www.bauarchitects.com/